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진작에 사라진 요즘, 일찌감치 기술이라도 배워놓자고 결심하던 차, 도배가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는 주변의 권유로 도배를 배우게 되었다.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고, 동네 학원에 주말반 도배과정을 등록하고 장장 16주동안 월화수목금금금 도배 노예 생활에 적응되고 있을때 쯤 도배기능사 시험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내 실력.. 그러니까 3시간 커트라인이고, 유투브와 여러 인터넷 후기들, 카더라 등을 종합해 봤을때 큰 실수만 없으면 무난히 합격하겠다 싶었다.
OO님이 안되면 누가 합격하겠어요? 하하하~ 동기들의 응원을 한껏 받으며 자신감은 이미 충만해 있었다.
시간내에 가뿐히 작품을 완성하고 당당히 동기들 단톡방에 합격소식을 알리는 상상을 했다. 그리곤 다음 수업 때 개선장군처럼 가서 피자와 치킨을 쏘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시험장으로 갔다.
그런데 머나먼 미국땅에 계신 마이크 타이슨 형님께서 말씀하셨다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그 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시험을 본 장소는 충청권에 있는 도배학원이었다.
혹시나 인물이 특정되게 될까봐 조심스러워서 많은 것을 공유하지 못하지만..
학원 이름이 특이하긴 했다. 왠지 우리 장모님이 굉장히 싫어하실 것 같은 이름이었다.
오해할까봐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데, 그 학원 시설은 너무너무 좋았다.
생긴지 얼마 안된 학원이라 그런지 시설도 너무 훌륭하고 쾌적했다.
채광도 좋고 통풍도 잘되고.. 시설이 너무너무 좋고, 사용 장비들도 우리 학원에 비해서 고급스럽고 비싸보였다.
(장점을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싶은데.. 참겠다)
무엇보다도, 그 학원에 계신 원장님? 선생님? 여자분들이 두분 계셨는데 두 분다 너무너무 상냥하시고 친절하셔서 학원을 여기로 옮기고 싶을 정도였다. (보통 그 학원 선생님이나 직원분들이 시험 당일 진행요원을 맡아주시는 것 같았다)
문제는 시험위원이다.
시험위원들은 그 학원과 상관없이, 다른지방에서 파견된다고 한다.
시험장에 도착하니 12시 20분, 오전 시험이 막 끝난 상태였다.
거기계신 직원분들께 여쭤보니 오전에 10명이 시험을 봤는데 딱 1명만 제 시간내에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어제도 1명이 합격했고 그 전 주에도 그 정도 수준이라고 했다.
잉? 그럴리가요? 그러면 합격율이 10%잖아요?
밑에 표에서 보다시피 보통 도배기능사 역대 합격율이 35-40%수준인데.. 10프로 대 합격율이 무슨말인가?
충청도 사람들이 말이 느릿느릿 하다지만 행동까지 느릿느릿해서 도배를 늦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도배시험장에 유독 느린 사람들만 응시한 것인가?
그렇게 불안감이 스믈스믈 올라오던 찰나, 마침 시험 끝낸 젊은 여성 분이 내려오시면서 말씀하셨다.
"두번 다시는 충청도에 오지 않겠어"
말투가 서울사람 같았다.
느낌이 싸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거야?
시험위원님들은 총 세 분이었다.
나이 육십대 중 후반쯤, 학교 교감선생님st 인자한 느낌의 두 분이 계셨고,
오십대 후반? 쯤의 밀리터리무늬 작업바지를 입으신 한 분이 계셨다.
짐작 하겠지만 밀리터리 작업바지가 오늘의 주인공이시다.
이 분의 인상착의를 설명하겠다.
이마에 "꼰대"라고 궁서체로 적혀있다.
스포츠형의 짧은 머리 스타일에, 약간 술톤의 까무잡잡한 낯빛에, 면도를 안한탓에 꺼먼 수염이 까슬까슬하게 올라와 있었다. 키는 170 정도? 다부진 몸매에 특히 배가 많이 나온 체형이다. 왠지 전직 군인? 아니면 최소 해병대 전우회 느낌(해병대 비하발언 절대아님!!!!)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다. 말투랑 발성법에서 약간 군인 스멜이 난다.
아무튼 사회생활 사수로 만나면 x되는 스타일이다.
(혹시나 전국 어느 시험장에 가셔서 이 분을 만나시거든.. 그냥 시험을 포기하시든지, 참가와 경험에 의의를 두시든지, 아니면 꼭 아래 설명한 부분을 잘 기억해서 신경쓰시길 바란다.)
자리 추첨을 하고 등에 붙이는 번호표를 받는다.
번호 순서대로 신분증 확인 및 참석자 서명을 한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전달받는다.
실격사항을 낭독해주시더니 "유투브, 자기가 배웠던 내용은 이랬어요 이딴 것은 안통합니다~ 시험지 내용그대로 체점합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재료를 확인해라고 했다. 하는 도중에 재료가 있니 없니 그딴소리 하지말라고 했다.
그리고 시험장으로 올라갔다.
모든 물품이 부스내에 다 준비가 되어있고, 물도 다 떠져있었다.
약 3분정도 풀판을 깔고 자기 물품을 정비하는 시간을 준다.
그러나 재료에는 손댈 수 없었다.
재료가 맞게 배분되어 있는지 확인도 못하게 하는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었다.
초배지가 40장인지 세어볼 수도 없는데, 나중에 재료가 모자라면 딴소리를 하지말라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부스앞에 도열하면 끝나는 시간을 알려주면서 시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초배를 완전히 마치고 -> 정배 도배지 재단 -> 천장+A면 풀칠 후 정배 -> 광폭 풀칠 후 정배 -> 실크 풀칠 후 정배 순으로 계획했다.
초배는 긴장했지만 오늘따라 술술 풀렸다. 중간중간 초배지 종이가 찢어지기도 했지만 얼른 방향을 바꾸는 식으로 대처를 잘했다. 너무 서두르지 않지만 적당한 탬포로 차근차근 미션을 종료시켜 나갔다.
그렇게 1시간 15분이 지났다. 초배를 완성했다. 꼼꼼히 살핀 후 시험위원을 불렀다.
"초배 마쳤습니다~"
문제의 그 꼰대 시험위원은 오자마자 천장 공간초배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곤 30장 중 전등 소켓에 붙은 초배지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격이라고 말했다.
나는 처음에 무슨 뜻인지 잘 못알아 들었다.
초배지끼리 겹치는 것이 10CM 이상인데 무슨 문제냐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풀이 발라진 부분이 3CM 이상이라고 말했다.
천장 공간 초배지는 그 네 모서리에 풀을 1cm만 발라서 붙여야 한다.
시험 규성상에 모든 치수에 대해서 그 규정을 2cm 이상 벗어날 경우 실격이다.
따라서 그 네 모서리에 발린 풀이 3cm를 넘어서게 되면 실격인 것이다.
전등 소켓에 붙은 초배지 1장의 네 모서리 중 한쪽 모서리의 귀퉁이 부분에 4cm 이상 풀이 발라져 있었다.
아마도 소켓 구멍을 따는 과정에서 풀발린 부분을 만지다가 번졌고, 4cm 이상 종이가 젖게 된 것이다.
사실 이렇게 떨어질수도 있다는 사실을 학원에서도, 유투브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너무 황당하고 화가났다.
정말 귀퉁이 한 5 cm 정도 너비로 4cm 정도 풀이 번져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여기서 떨어져야 한다고? x바 이게 말이돼?
더 짜증나는 것은 풀이 4cm 이상 발려진 부분은 이미 붙어있는 다른 천장 초배지 위에 붙은 부분이었다.
말인 즉슨, 4cm가 발려있다고 손 치더래도 천장면에 바로 붙은게 아니라 다른 초배지 위에 붙어있으므로, 따라서 공간을 띄우기 위한 천장 초배의 목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 꼰대양반은 나를 탈락시켰다.
그 뒤로 초배를 마친 사람들이 검사를 받았고, 똑같이 천장 초배에서 지적을 당했다.
나를 포함해서 총 4명의 사람이 나와 똑같은 같은 이유로 탈락되었고, 총 6명이 초배에서 탈락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도배지를 붙여보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줄줄이 탈락을 하니 모두가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고, 탈락을 면하기 위해서 너무 꼼꼼히 초배를 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었다.
내가 정리하고 시험장을 나올때 쯤,,, 그러니까 시험종료 1시간 쯤 남았을때였을까?
4명이 남았었는데, 단 한사람도 도배지를 붙이지 못했었고, 풀칠은 커녕 이제 겨우 한 사람만 도배지 재단을 마친 상태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날 10명 중 단 한명도 제시간에 시험을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도배시험 합격율이 그렇게도 낮은것이, 이렇게 지역마다 시험위원의 채점방식이 다른 이유라고들 한다.
쉽게 말해, x랄맞은 시험위원이 있으면 도배 할배가 와도 합격이 어렵다는 뜻이다.
혹시 도배 협회에서 도배합격율을 낮춰야하는 이유라도 있을까?
아니면 시험 감독의 편의를 위해서 우선 다섯명은 초배에서 떨어뜨리고 시작하는것일까?
사실 도배는 도배기능사 자격증이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 처음부터 일을 맡아서 할 수 없고, 도제식으로 배워가면서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그 과정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냥 초기 몇년간은 고생하며 벼텨야(처음 몇달은 기술 배우려고 무급으로 일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인간 대접 받으면서 일하러 다닐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인테리어 사업체를 차리거나 관급공사를 하려면 무조건 자격증이 필요하고, 대형 건설사 아파트 현장에 취업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보통 자격증 시험자체는 실무와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특히 도배기능사는 더욱 그렇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실 70-90년대에나 저런 누런 초배지를 썼을까? 지금은 저런 초배지를 어디에도 쓰지 않는다.
이음부분이나 보의 모서리 부분에 초배지를 덧붙인 초배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손수 재단하고 풀칠하지 않는다. 기계를 안쓰는 현장은 없다.
학원에서 자격증을 위해서 배우면 결국 현장에서 사용하는 기계조차 다룰 수 없으며 현장에서 사용하는 재료가 뭔지도 알 수 없다.
재료나 재단방식 등 실무에서는 더이상 쓰지 않는 방식을 고수하며, 그들은 정말 변하지 않는다.
그 시험위원은 그 스스로가 이 방식이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것이다.
그리고 이 시험제도가 불합리하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험을 보든 안보든, 풀을 2cm를 바르든 20cm 바르든, 앞으로 실무에서 천장에 이딴 종이를 천장에 붙이지 않을 거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 그래도 자격증은 자격증이니까..
자격증 시험장에서 항상 컴플레인이 많다보니 원칙대로 해야하는 것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컴플레인 하는 수험생에게 호되게 당한적이 있었을테지, 그래서 그렇게 x라이가 되었겠지..
그렇게 원리 원칙에 집착하고, 사소한 것에 목숨걸고, 과거에 매몰된 꼰대가 되었겠지..
아니면 나이먹고 어딜가도 내 목소리 낼 만한 곳 하나 없으니, 그 알량한 시험 감독 완장차고 갑질한번 해보고 싶었나? ㅋ
그래도 그 정도는 유두리 있게 넘어가 줄수는 없었겠습니까?
몇주를 고생하고, 4-5시간 운전해서 시험장까지 왔는데.. 꼭 그렇게 해야만 속이 후련했습니까?
그렇게 영원히 도배시험장에서 행복하게 시험감독 하시길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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